최초의 기술주 거품은 ‘잠수함’에서 시작되었다, 17세기 보물선 광풍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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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가?

오늘날 자본 시장의 주인공은 단연 인공지능(AI)과 첨단 반도체다. 연일 쏟아지는 혁신적 기술 공시와 그에 반응하는 뜨거운 주가를 보며, 현대인들은 우리가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기술주 열풍’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곤 한다. 과거의 닷컴 버블을 넘어선 이 거대한 파도는 오직 현대 기술 문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전유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인간의 탐욕과 기술에 대한 맹신은 놀라울 정도로 반복적이다. 우리는 이미 300여 년 전인 1600년대 후반, 현재의 테크 기업 열풍과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최초의 기술주 거품’을 목격한 바 있다. 그 주역은 반도체 칩이 아니라, 바닷속 깊은 곳을 향하던 ‘잠수 장비’였다.

한 번의 거대한 성공이 만든 환상: 윌리엄 핍스와 32톤의 은

금융 역사에서 모든 광풍의 시작에는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압도적인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이 보물선 열풍의 도화선은 1687년, 뉴잉글랜드 출신의 선장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가 당긴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그는 침몰한 스페인 해적선에서 무려 32톤에 달하는 은을 건져 올리는 데 성공한다.

햇빛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32톤의 은괴는 단순한 부의 증명을 넘어, 시장의 확률적 기대를 뒤흔드는 강력한 왜곡 장치로 작동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극히 낮은 확률의 성공이 마치 보편적인 미래 가치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의 전형이었다. 바닷속에 막대한 부가 실재한다는 시각적 충격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나도 제2의 핍스가 될 수 있다”는 희망 회로를 돌리게 했고, 이는 곧 막대한 자금이 실체 없는 수중탐사 시장으로 유입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혁신이라는 이름의 포장지: 쓸모없는 특허와 주가 펌핑

성공 사례가 입증되자 시장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수중탐사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었고, 이들은 투자자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기술력’이라는 수식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쏟아져 나온 각종 수중탐사 장비와 잠수 종(Diving Bell)에 대한 특허들은 오늘날 테크 기업들의 ‘AI 기술 공시’와 매우 흡사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지점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은 극대화된다. 투자자들은 해당 기술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혹은 경제성이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었지만, ‘특허 보유’라는 공시 자체를 성공의 보증수표로 오독했다.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문헌은 이 비극적인 코미디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꼬집는다.

“특허 장비는 거의 대부분 쓸모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와는 관계없이 해당 장비를 사용하는 수중탐사 회사들의 주가를 띄우는 데는 한몫 했다.”

이는 현대의 기술주들이 실질적인 매출이나 이익 없이 오직 ‘혁신적 기술 보유’라는 서사만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양상과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기술의 실체보다 ‘혁신’이라는 포장지가 자본을 유혹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최초의 기술주 거품: 1689년의 정점과 몰락

수중탐사 회사들의 주가는 1689년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었다. 비록 당시의 구체적인 수익률 데이터가 온전히 남아있지는 않으나, 시장을 지배했던 광기는 훗날의 닷컴 버블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초 체력(Fundamentals)이 뒷받침되지 않은 기대감은 필연적으로 붕괴를 맞이한다.

약속했던 보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혁신’이라 칭송받던 잠수 장비들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고철덩어리로 변해갔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중탐사 회사에 투자했던 이들은 원금마저 전부 날려버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윌리엄 핍스의 단 한 번의 성공이 만든 신기루가 수많은 투자자의 전 재산을 집어삼킨 것이다. 실체 없는 기대감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파괴력은 3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음을 이 비극적인 결말은 웅변하고 있다.

300년 전의 거울이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 것

17세기 수중탐사 광풍은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탐욕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전형적인 금융의 역설을 보여준다. 당시 투자자들은 ‘은’이라는 실물적 가치와 ‘잠수 기술’이라는 신비로움에 매몰되어, 투자의 본질인 ‘현금 흐름’과 ‘실현 가능성’을 망각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투자 환경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혁신’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관대하며, 그 단어가 내포한 불확실성을 기술의 화려함으로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거품은 언제나 가장 화려한 기술의 이름을 빌려 찾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추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변주를 달리할 뿐이다. 300년 전의 거울을 닦아 오늘을 비춰보자.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혁신적 기술’ 중, 300년 전의 ‘쓸모없는 잠수 장비’와 닮은 꼴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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